그 일은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처음 그 증세를 알아차린 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였다.
‘비누가 물에 젖어 문드러졌네.’
하지만 문드러진 것은 비누가 아니라 내 손가락들이었다.
‘아, 안 되.’
자세히 보니 손가락만이 아니었다. 손바닥과 팔도 조금씩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어떤 병에 걸린 걸까?’
그럴 순 없었다. 비록 전시회 한번 못해 보고 그림 한번 못 팔아 보았지만 화가였다.
나는 당장 검색해 보았지만 딱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 손가락을 본 의사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이런 건 처음 봐!”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몇 가지 약을 지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이제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믿으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튿날 흐느적거리는 증상이 온몸으로 번졌다.
“이럴 수는 없어!”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을 왔다 갔다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이 효과가 없었다.
화가 난 나는 약들을 전부 변기에 쏟아버렸다.
그리고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온몸이 흐느적거리는 나를 보며 감탄했다.
“학회에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는 가방을 챙겼다. 그는 외투까지 입고 문을 열고 나가다가 내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당신, 새로운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나를 병실에 두고 떠났다.
간호사들은 나를 마치 외계에서 온 신기한 생명체라도 되는 듯 다루었다.
“자, 이리로 오세요. 여기가 당신의 새로운 집이에요. 모든 게 당신을 위한 일이에요. 우리가 보호해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나의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후, 내 몸은 전부 다 진흙처럼 흐느적거리고 물렁거리게 되었다.
“몸 상태는 어떤가요?”
아침이면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물었다.
“보다시피 흐느적거리고 있어요.”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요.”
의사들은 흥미롭다는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더니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의사 하나가 물었다.
“기분은 어떠세요?”
내가 대답했다.
“물론 절망적이지요. 나는 화가인데 앞으로 그림을 못 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의사는 눈썹을 치켜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화가라고요?”
나는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의사가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어머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그림 한 점 못 팔았고 전시회 한 번 못 했다면서요?”
그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가 떠나고 나는 다시 병실에 갇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진흙처럼 무기력했다.
잠들 수 없는 밤이 시작되었다.
이틀 후, 의사들은 나를 수술하기로 했다.
간호사가 내 몸에 전신마취제를 주입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몸이 진흙처럼 된 후로 내 몸은 감각을 잃었다.
나는 잠이 든 척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건 수술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의사들이 내 몸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보았다.
젊은 인턴 의사들이 노트를 들고 창밖에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들이 모두 떠났다.
나는 재빨리 그들이 남기고 간 나이프 하나를 챙겼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나를 이동식 침대에 옮겨서 복도로 밀고 갔다.
나는 옷소매에 숨긴 나이프의 차가운 감촉을 즐기며 숫자를 셌다.
0, 그리고 1. 그리고 다시 0.
내가 마취에서 깨어난 척하자 간호사들이 나를 병실로 돌려보내 주었다.
병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 있었다.
어머니는 슬퍼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바나나를 까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런 병에 걸리다니 넌 여전히 한심하구나.”
그는 내가 내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넌 화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기엔 내가 충분히 특별하지 못하다는 거였다.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대로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밤이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고 난 혼자 병실에 남았다.
나는 옷소매에 숨긴 나이프를 꺼내 자신을 토막 냈다.
모든 것을 재조립하고자 했다.
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내가 꿈꾸는 모습으로 짜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리석을 뿐이었다.
잘린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흩어진 나의 몸들이 나를 보았다.
드디어 나는 잠이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