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cubmarine.egloos.com/7148512

 


그날은 다행히 두꺼비가 보이지 않았다기호는 무사히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입구에서 기다리던 정민이 포치에 달린 줄을 당겼다종이 두 번 울리는 사이기호는 입구에 있는 나무 문패를 보았다알 수 없는 언어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물으려다가 입구 문에 장식된 박쥐 조각상이 날개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잊고 말았다.

 

어느 회사 제품이지?’

 

기호는 허리를 굽혀 그 조각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박쥐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기호는 감탄했다.

 

꽤나 자연스러운걸...’

 

박쥐는 이제 눈을 뜨고 그를 마주보았다까만 콩같이 반짝이는 눈을 찌푸리며박쥐가 말했다.

 

그렇게 분석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건 실례야.”

 

기호는 놀라워하며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정민에게 물었다.

 

방금 어디로 소리를 낸 거죠?”

 

그러자 정민이 손가락으로 박쥐의 입을 가리켰다기호는 또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안에 스피커 장치가 없는걸요이런 동물 형태의 로봇들은...”

 

그는 박쥐가 혀차는 소리에 말을 멈췄다박쥐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보고 들어도 믿지 못한다면 방법이 없지. ‘멍청이들을 설득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인생은 짧으니까!’ 어이거기덩치 큰 남자종을 울린 게 당신이야?”

 

덩치 큰 남자라 불린 정민이 대답했다.

 

그래맞아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럼 질문에 답을 해야 해.”

 

준비됐어.”

 

박쥐가 목을 요란하게 가다듬은 후 질문했다.

 

네가 생각하는 편협한 동물은 어떤 동물이지?”

 

기호는 왠지 그 질문의 답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느낌을 받았다정민이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편협한 동물은 자신이 편협하지 않다고 믿는 동물이야.”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대답이네.”

 

박쥐는 그렇게 말했지만 문을 선뜻 열어주었다기호는 여전히 박쥐를 의심의 눈으로 살피느라 바빴다어디로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간 정민이 재촉했다.

 

어서 들어와.”

 

심술이 난 박쥐가 문을 앞에서 닫아버리려 했지만 기호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등 뒤로 문이 쾅하고 닫혔다그러자 사방이 온통 컴컴해졌다어찌나 어두운지 아무것도 안 보일 지경이었다.

 

기호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그는 눈을 좁히고 열심히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뻗어 허공에 휘저어 보았다닿는 것도잡히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되자 그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낯선 사람을 왜 좋다고 쫓아온 거야생각해보면 위험한 일이잖아대체 난 뭘 기대한 거야?’

 

그는 답답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해서 손을 뻗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드디어 그의 손끝에 무언가가 닿았다그는 그것이 정민의 팔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이런죄송해요.”

 

그러자 어둠 속에서 그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지금 천을 뒤집어쓰고 있어.”

 

천이요?”

 

그래이것 봐.”

 

그의 손이 기호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를 벗겨냈다순식간에 눈앞이 환해졌다기호는 무척이나 어리둥절했다천이라니대체 누가언제그의 머리 위에 천을 씌웠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시시콜콜 따질 겨를이 없었다눈이 부신 와중에도 가게 안을 둘러봐야 했던 것이다전체적으로 햇살이 가득했다목조로 된 가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두꺼운 카페트와 쿠션이 군데군데 놓여 있어 아늑했다.

 

기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방금 그가 들어온 입구 양옆에 창가 자리가 있었는데오른편에 여자 세명이 나란히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 든 여성 한명과 젊은 여성 두명이었다나이 든 여성은 깐깐한 교수같은 인상이었는데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단추가 촘촘히 채워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젊은 두 여자는 일란성 쌍둥이였다똑같이 창백한 얼굴에 겨울 호수처럼 차갑고 푸른 눈을 가졌고 부스스하게 탈색된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고 있었다나시와 청바지를 입었다.

세명의 여자들 모두 기호를 빤히 쳐다보았다기호도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정민은 속으로 꼭 나무 위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올빼미들 같군이라고 생각했다.

 

손님이에요.”

 

정민이 말하자 나이 든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호에게 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차가운 레모네이드뜨거운 레모네이드미지근한 레모네이드어떤 걸로 드릴까요?”

 

“...차가운 레모네이드요.”

 

저는 루트비어 부탁해요.”

 

정민이 지갑에서 납작한 동전 두 개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그림도숫자도 없는 동전이었다여자가 가게 안쪽의 문으로 사라지고정민이 왼쪽 창가 자리를 가리키며 앉자고 했다.

 

어때이 가게?”

 

이국적이네요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데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쌍둥이 자매가 흘깃거리며 소곤거리고 웃고 있었다.

 

왜들 저러죠?”

 

기호가 묻자 정민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곳의 통과의례야곧 시작할 거야.”

 

통과의례라뇨?”

 

그것보다 일단 한 모금 마셔봐.”

 

어느새 테이블 위에 레모네이드와 루트비어가 한 잔씩 도착해 있었다언제누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기호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레모네이드를 살폈다유리잔 안의 레모네이드는 평범했다그는 새가 부리를 물에 담그는 것처럼 살짝 맛만 보았다레모네이드 맛이었다.

 

그러는 사이정민은 잔의 반을 비웠다다음 순간기호는 화들짝 놀랐는데 바로 옆에 쌍둥이 자매들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 온 손님을 위한 연극이 있어손님만을 위한 작품이야어때볼래?”

 

연극이요?”

 

연극!”

 

그들은 대뜸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여기 초코 머핀과 체리 타르트가 있어손님이 선택해어느 쪽이야?”

 

기호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본 후 대답했다.

 

고맙지만 지금은 사양할게요전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안돼손님은 선택해야 해!”

 

?”

 

가게에 들어왔으니까 선택해야 해!”

 

계속 그런 식이었다그 후로 기호가 두 번을 더 거절했는데도 쌍둥이들은 막무가내였다그러자 기호도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전 필요 없어요전 레모네이드로 충분해요대체 왜 제게 강요하죠고르지 않겠다는데...”

 

그는 말을 멈췄다쌍둥이들이 갑자기 발을 구르면서 소리를 꽥 질러댔기 때문이다.

 

선택해!”

 

선택해지금당장!”

 

기호는 아연실색하여 정민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냥 아무거나 골라그래야 끝날 테니까.”

 

세상에.”

 

기호는 하는 수 없이 접시 하나를 가리켰다쌍둥이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초코 머핀을 고른 거야?”

 

그래요.”

 

어처구니없는 일은 거기서 더 일어났다체리 타르트를 들고 있던 쌍둥이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그녀는 자기 케이크를 접시째 벽에 내던졌다요란한 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지고 불쌍한 체리 타르트가 짓뭉개진 채 바닥에 굴렀다.

 

그녀가 비극의 연극 주인공처럼 흐느끼며 가게 안쪽 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으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아주 잠시동안의 침묵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남아 있던 쌍둥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빙글빙글 춤을 추고 기호를 포옹하기까지 했다그녀가 자신의 초코 머핀을 테이블에 두고 떠나며 말했다.

 

저 앤 무가치하고 난 가치가 있지안 그래?”

 

기호는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마저 가게 안쪽 문으로 사라지자 그는 정민에게 물었다.

 

대체 뭐였죠왜 저런 거예요?”

 

쟤들이 시작하기 전에 말했잖아. ‘널 위한 연극이라고.”

 

무슨 연극이 저래요?”

 

내가 대신 사과하지널 여기로 데리고 온 건 나였으니까.”

 

기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뇨그럴 필요 없어요당신은 절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제가 여기 온 거예요제 결정이었어요.”

 

네 결정이었다고?”

 

우유부단하게 휩쓸렸다고 해도 당신 탓은 아니에요.”

 

어른스럽군.”

 

그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기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정민은 남은 루트비어를 들이켰다.

 

취업준비생이라고 했지안드로이드들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고?”

 

기호는 레모네이드 잔을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요망할 안드로이드들 같으니라고.”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아뇨딱히그냥 아무 일이나 밥벌이만 되면 뭐든 상관없어요.”

 

너무 낭만이 없는 얘기인데.”

 

요즘 시대에 낭만이 무슨 소용이에요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이에요그보단 현실적인 게 중요하죠.”

 

그런가?”

 

기호는 레모네이드를 들이켰다이상하게도 그것을 마시자 마음 한켠이 느슨해지면서 숨쉬기 편해졌다이번엔 그가 정민에게 먼저 물었다.

 

해결사라고 하셨죠?”

 

정민이 루트비어를 다시 반 비우고 대답했다.

 

그래난 해결사야그게 내 직업이지사람들은 내게 의뢰하고 난 그걸 해결하는 거야.”

 

보통 어떤 일들을 의뢰받나요?”

 

온갖 잡다한 것들이지무언가를 찾아달라거나 무언가를 전달해 달라거나.”

 

어쩌다가 그 직업을 갖게 되었나요?”

 

집을 떠나서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정신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나를 해결사라고 부르더군.”

 

그거 좋네요이상적인 취업 과정이에요.”

 

기호는 레모네이드를 다시 들이켰다중간부터 음료의 양이 전혀 줄지 않고 있는데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정민이 물었다.

 

취업준비생이라면 가족들과 함께 지내나한집에서?”

 

아뇨지금은... 집을 나왔어요.”

 

불편해서?”

 

.”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이 조금 있어서요작은 방을 구해서 지내고 있어요.”

 

가족이 걱정하지 않나?”

 

기호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의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가족이 몇 명 있지?”

 

아버지 한 분 계세요.”

 

기호는 남은 레모네이드를 전부 마셨다잔은 곧장 다시 채워졌다이번엔 기호도 그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그런데도 놀라지 않았다전혀 논리적이지 않은데도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호는 테이블에 팔을 올려놓고 기댔다그는 그제야 자신이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 이시우 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것에 감격한 것인지 그의 입이 제멋대로 말을 지껄였다.

 

저희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사람이에요언뜻 들으면 좋아 보이죠하지만 그거 아세요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엄격해요자기 자신에게도타인에게도애초에 기준이 높달까요자식들에게는 더하죠.

 

그래도 저는 그분을 존경해요제게 커다란 존재예요뭐랄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그런데 한계가 있었어요처음부터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이상적인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물론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아버지는 종종 제게 실망하셨어요그 사실에 전 자신을 탓했어요. ‘나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전 아버지가 미웠던 것 같아요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다니 혼란스러웠죠.”

 

기호는 입을 닫고 뺨을 긁었다묻지도 않은 걸 줄줄 얘기하다니뒤늦게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그가 정민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길게 했네요미안해요.”

 

미안할 것까지야.”

 

정민이 웃으며 레모네이드를 권했다잔은 다시 가득 채워져 있었다기호는 몸을 조금 떨었다불안한 동시에 무척이나 즐거웠다.

 

더 얘기해봐듣고 싶으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쁜 일이었다기호는 남은 레모네이드를 전부 들이켰다창가에 매달린 작은 종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창문 사이로 정원의 향긋한 풀냄새가 들어왔다기호는 나른하고 눈꺼풀이 무거웠다그는 잠에 들었다.

닉네임
비밀번호
블로그
비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