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는 헬기에서 내렸다. 등 뒤로 노을이 졌다. 그녀는 인공폭포를 지나, 정형식 정원으로 들어섰다. 메디치 빌라을 본따 지어진 저택의 이름은 “하늘의 집”이었다.
그녀가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한 남자가 옆에 따라붙더니 친한 척을 했다.
“이제 오는 건가요?”
이시우의 장남 이권우는 훤칠하고 호감 가는 외모였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그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했다.
리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걸으면서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있고 말고요. 아버지가 우리 귀여운 막내, 애완로봇의 방을 정리하고 계세요. 이제야 마음을 결정하신 모양이에요.”
리사는 우뚝 멈춰서 그를 쳐다보았다.
“마음을... 결정해요? 어떻게 하기로요?”
“뻔하지 않겠어요? 폐기하겠다는 거죠.”
“폐기...”
“그래요. 머리를 부수겠죠. 애석하게도 당신들에게는 스위치가 없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리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군요.”
“그러게요. 아버지는 성급한 성격이 전혀 아니신데... 뭐, 그만큼 기호라는 애완로봇과의 부자 관계 놀이에 감정이입을 했던 거겠죠.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분노가 설명 안 되거든요.”
“분노요?”
“모르는 척하기예요? 며칠간 아버지 기분이 안 좋았다는 거 다 알잖아요. 아버지는 진심으로 기호에게 배신감을 느낀 거예요. 황당한 일이죠. 로봇따위에게...”
리사는 고개를 돌렸다. 이권우가 히죽 웃으며 그녀 가까이로 다가섰다.
“그나저나... 아버지의 다음 애완로봇은 기호보다 귀여웠으면 좋겠어요. 꼭 당신처럼요. 기호는 워낙 무덤덤해서 놀리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실례할게요.”
그녀가 돌아서는데 그가 팔을 잡아챘다. 그 바람에 그녀의 몸이 그에게로 쓰러졌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내 동생이 되면 좋지 않겠어요? 내가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리사는 그를 밀어내고 냉정하게 말했다.
“전 반려용이 아닌 사무용 안드로이드예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거나 그거죠.”
“당신이 가지고 놀 만한 인형은 이미 충분할 텐데요?”
그가 음흉하게 웃는 사이, 리사는 빠르게 달아났다. 그녀는 공원을 가로질러 저택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위에서 짐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왜 로봇들이 기호의 물건들을 전부 밖으로 옮기는 거야?”
그녀가 이시우를 찾아내어 물었다. 그는 벌써 절반 넘게 비워진 기호의 방 창가에 서 있었다. 그가 돌아서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제 필요 없으니까. 버려야지.”
“...진심이야?”
“그래, 여기 이 방에 있는 물건들, 그리고 기호까지 전부 처리할 거야.”
“기호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방금 말했잖아? 여기 다른 가구들처럼 부수고 소각해서 폐기할 거야.”
리사의 아름다운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쓴 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입가를 찌푸렸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어? 그럴 거면 내게 왜 물었어? 기호가 돌아오길 바란 것 아니었어?”
“그랬었지. 하지만 사과를 해도 소용이 없었잖아. 네 말과 달리, 마법이 일어나지 않았잖아.”
“그야 당신이 직접 쓰지 않았으니까, 기호는 바보가 아니야.”
“어쨌든 기호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그 벌로 폐기하겠다는 거야?”
“그래. 맞아.”
“당신, 정말 유치해.”
그녀의 말에 이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묻는 표정을 짓자 리사가 다시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당신보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차라리 낫겠어. 대체 무슨 어린아이같은 심보야?”
이시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넌 정말 솔직해. 진심을 고약한 말투로 마음껏 지껄여대지. 널 그렇게 디자인한 건 나야. 그러니까 내가 취향이 고약한 거야.”
“그걸 지금 알았어?”
“...내가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 너 같은 안드로이드 따위는 하루에도 몇십 개씩 갈아치울 수 있어.”
“요점 흐리지 마.”
“뭐?”
“당신이 얼마를 버는지는 지금 대화와 관계없어. 난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날 옆에 둔 이유, 지금처럼 당신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때 옆에서 바로잡는 것 말이야.”
그녀는 가방에서 약이 든 투명케이스를 꺼내 건넸다.
“자, 이걸 먹어. 마음이 진정될 거야. 그럼 기호를 폐기하는 것보단 그냥 두는 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시우는 투명케이스를 받았다. 그는 그 안에 든 선명한 코발트 블루 색상의 감정억제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리사에게 그것을 도로 던졌다.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안에 있던 알약들이 튀어나와 바닥에 흩어졌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날 조종하려 들어?”
“조종? 내가? 아니, 그러려는 게 아니야...”
“다 알고 있어. 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 너 자신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하지?”
리사의 턱이 아래로 벌어졌다. 그녀가 말문이 막힌 채 있자 그가 다시 한번 다그쳤다.
“감정을 지닌 미개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안 그래?”
리사는 천천히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이번에도 솔직하게 말했다.
“그거... 대단한 착각인걸.”
이시우는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녀에게 이만 가보라고 했다. 그녀가 물러나자, 이시우는 테라스로 나갔다. 석양이 붉게 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
기호는 세면대의 수도를 잠갔다. 그는 젖은 얼굴로 거울을 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순간, 빛의 장난인지 거울에 푸른빛이 비친 것 같았다. 그것이 쌍둥이 자매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했다.
기호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방으로 나왔다. 낡은 방엔 시멘트의 차갑고 비린 냄새가 감돌았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가 새벽 6시를 알렸다.
창문은 세로로 길고 무척이나 폭이 좁았다. 기호는 그 창문을 위로 밀어 올렸다. 그의 아파트 창밖은 곧장 도로였다. 이른 시각부터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기호 자신은 몰랐다. 그가 창밖을 바라볼 때 얼마나 열망에 찬 눈을 하고 있는지를. 그는 한참 동안 그곳에 서서 창밖을 보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확인했다. 새벽에 온 메시지가 있었다.
<그가 당신을 폐기하기로 결정함. 내일 자정이 되기 전에 도망칠 것.>
수신인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기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외투를 걸치며 생각했다.
‘아버지가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셨군. 생각보다는 시간이 걸렸어.’
대수롭지 않았다. 옳은 결정이었다. 쓸모없어진 물건은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
그보다 그는 오늘 일정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황당한 일이지만, 그는 취업을 했다. 여러 가지 생각해본 결과, 그가 당장 해보고 싶은 일이 그거였다.
‘분명 정민과의 만남이 영향을 끼친 거겠지. 그와의 대화가 내게... 어떤 불씨를 심은 거야.’
정민은 그에게 엉뚱하게도 인간이 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알고 싶어졌다.
취업하여 집단의 일원이 된다면 조금은 알게 될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운이 좋다면 누군가와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과 내일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군. 뭐... 그래도 안 해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딱히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기호는 방문을 잠그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조용했고 모든 집들의 문과 창문이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문 안쪽의 모습은? 전부 다를 것이다.
‘난 그동안 구름 위에서만 지냈어. 하늘의 집, 거길 나와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는 거야.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동안 내 세상엔 아버지밖에 없었어. 아버지만이 전부였지. 앞으로 이틀간, 나는 땅 위에 살아가는 진짜 인간들을 만나보게 될 거야.’
하지만 조심해야 했다. 안드로이드의 취업 활동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만약 정체를 들킨다면 내일 자정이 되기도 전에 그는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불빛이 반짝이며 그를 환영했다.
‘짧지만 흥미로운 시간이 될 거야.’
엘리베이터가 그를 아래로 옮겨 주었다. 무인 택시를 타고 주소를 말했다.
“번영빌딩, 지하 9층.”
무인 택시가 운행을 시작했다.